서양문화와 와인
서양의 문화는 크게 두 가지의 뿌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 로마문화에 뿌리를 둔 헬레니즘과 기독교 문화에 바탕을 둔 헤브라이즘이 그것입니다. 항상 이 두 가지 문화 중 어떤 것이 우위를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서양의 문화사가 변하게 됩니다. 옛날 로마시대는 헬레니즘이 전성기를 맞았고, 중세에는 헤브라이즘이 그리고 르네상스는 헬레니즘이 다시 부활하는 그런 양상을 보이는 것이 서구 문화사입니다.
와인도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가 지고 있습니다.
고대문명의 와인 포도나무의 원산지는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소아시아로 알려져 있는데, 이 곳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가 홍수가 끝난 뒤 정착하는 아라랏산 근처로 학계와 성경이 우연히 일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9장 20 절을 보면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셨다는 구절부터 시작하여 구약, 신약을 통해 수백 번 언급된 것이 와인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역사적 근거는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의 유적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와인에 세금을 부과할 정도로 산업형태를 이루고 그 제법도 발전하여 용기를 밀봉시키고 차가운 곳에서 저장하는 등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던 헬레니즘 시대에는 박카스(디오니소스) 신화와 함께 와인이 전 성기를 맞게 됩니다. 이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바탕으로 시와 음악, 그리고 미술 등 예술의 발달과 공연, 집회, 축제 등 문화적인 환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와인과 함께 시와 음악 그리고 철학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로마인들은 포도 품종을 분류하고 재배방법, 담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와인의 질을 향상시키고 나무통과 유리병을 사용하여 와인을 보관, 운반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 와인은 로마의 주요 상품으로 유럽전역에 퍼 지기 시작했고 당시 식민지이던 프랑스, 스페인, 독일남부까지 포도재배가 이루어져 오늘날 유럽 포도단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수도승의 역할과 파스퇴르의 발견
그러나 로마제국이 쇠퇴해 가면서 헤브라이즘이 지배하는 중세로 접어들면서 포도재배, 와 인거래도 주춤하지만, 이 때는 교회의식에 필요한 와인 때문에 와인의 전통을 이어가게 됩 니다. 그러나 십자군과 수도원의 활발한 활동으로 와인산업이 다시 빛을 보게 되는데, 십자 군은 중동지방에서 새로운 포도나무를 들여와 오늘날 유럽 포도의 주종을 이루게 하고, 수 도원은 풍부한 노동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당 시는 놀고 있는 땅도 많고 수도원은 세금도 면제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만든 와인은 교회의 식에 필요한 수요를 충당하고 판매 수입원으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관리방법을 도입하여 근대 와인제조의 기초를 확립합니다.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시민계급이 형성되면서 와인 수요가 증가하고 거래가 활발해져 와인이 중요한 상품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와인의 등급이 매겨지고 유럽 전역과 신대륙으로 퍼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때의 와인은 품질이 불안정하여 알코올이나 설탕을 섞는 수가 많았습 니다. 그래야 장기간 보관이나 운반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이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발효의 원리나 오염의 원인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어렴풋이 당분이 변하여 알코올이 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1860년 파스퇴르는 미생물 작용에 의해서 발효와 부패가 일어난다는 획기적인 이론을 주장하여 와인제조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됩니다. 오늘날의 와인 이러한 과학적인 발견으로 순수효모의 배양, 살균, 그리고 숙성에 이르기까지 제조방법을 개선하게 되었고, 산업혁명 이후 발달된 기계공업을 이용하여 비교적 싼값으로 와인을 대량생 산하여 일반 대중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게 됩니다.
오늘날 와인은 이러한 오랜 전통과 자연과학이 빚어낸 걸작으로 그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와인은 서양역사와 함께 시작하여 그 맥을 같이 하기 때문에 와인의 역사를 서양문화의 흐름과 꼭 같다고 해도 거의 틀리지 않을 정도로 이들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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